파란종이가 만장 같은 내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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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병철 (211.♡.195.44) 댓글 0건 조회 39회 작성일 26-05-18 06:05본문



반백년 넘게 살아온 내인생을 회상해보노라니 파란만장하다 (파란종이가 만장이다 아직 더 많이 남은 내 인생의 목표 장애자타운을 건설하고 운영하며 좋은일도 많이기 위해 과거의 장점을 계승해서 당당하게 살고 살아갈 것이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사하초등학교에 입학 지금 버스 코스로 정류장이 15개 되는 거리를 걸어서 통학했고 중학교 시절 육성회비 미납으로 등교 정지를 당했한 적 있다- 신문배달과 연탄배달을 했다 대양고등학교통신과 입학 팝송에 심취했다 3학년때 가발을 착용하고 음악다방의 DJ 술집 웨이터, 3학년때 여고생과 데이트하다가(그 당시에는 여학생과 교제가 금지되었던 시절임) 교외 지도반 셈에게 잡혔으나 자격증 1.전파통신 2.무선설비 3.telex 취득했고 회비를 면제받는 장학생이었기 때문에 훈방조치를 받았음, 경남전자정보대학 전자공학과로 진학 1학년때는 장학금을 받았다 (컨닝 페이퍼를 확실히 준비해서 불로소득 점수가 포함되었던 것이겠지만^.^) DJ 아르바이트도 했다 2학년때 전자산업기사 자격증과 전자교사 면허증 취득) 당구는 200점이었고 디스코에 미쳐서
당구장과 세미나이트 클럽에서 신나게 놀았다 군대시절은 강원도 인제원통의 12사단 사령부 SIG28에 소속되어 사단 지휘망 담당 및 대대 저격병) 패기 넘치는 군대시절이었다 상병때 사령부 통신대에서
실시하는 연대 통신병 교육 교관이었고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AOP(air observation post)와 상황실
육군의 통신장비는 전부 취급했다 사단장님 무전기 비화장치도 사용하는 담당병) 사단장 전용 헬기(500MD)와 정찰기 O-1기)를 타고 임무를 수행했고 도청 및 방해전파기 방산장비 테스트 및 12사단
중부전선 철책의 끝에서 끝에까지 전파감도 특성을 체크하는 임무수행도 하고 최초의 보고서를 올렸다
제대후 취업준비는 내 능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 전기 전자 자동제어분야 책을 구입해서 공부했다 입사시험을 치고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발령을 받았다 입사시험의 영어는 낙제 점수 정도 될 것 같아서 답안지 여백에 글을 썼다 “회화는 못하지만 업무적인 전문용어 위주의 대화는 가능하므로 작업에는
자신이 있다 통신 전자기사 자격증이 있으며 전기적 제어분야 이론을 알기 때문에 업무적응력이 매우 좋아서 실무적으로 더 잘 할수 있다)” 합격했다 PLC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실무팀에 배치되어 시스템 구축 커미셔닝을 했다 입사시험을 통해 합격하면(4년제 대졸자는 실력과 무관하게 3급사원) (전문대졸자는 각종자격이 있어도 고졸자와 같이 5급 사원으로 입사됨) 그래서 나는 5급사원으로 입사했고 4급, 3급, 대리, 과장 승급 승진시험을 1. 전부 초시에 패스한 기록 2. 최단기간에 과장승진 3. 최연소 과장이라는 3개의 신기록을 세웠다 현장 실무 정비팀 시절 나는 365일간 회사 상황실에 나의 행선지를 통보해두고 다녔던 KEY JOB 요원이었다 감마레이 디텍터의 데이터로 철강 이론에 의한 물리 공학적 계산의 앙페르 주회적분등의 수식모델을 적용해서 백만분의 1까지 제어하는 CPU는 나 혼자 담당했고 프로그램들을 핵심만 압축해서 별도로 내가 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현장의 트러블 발생시 고난도의 트러블슈팅(복구 작업)시 쾌감과 재미를 즐기면서 회사생활을 했다 회사 인사고과 평가에는 S(special)이 많았다 히타치시스템 전문이었음) 현장 실무정비팀 시절 나는 광양제철소 DDC 산업컴퓨터 시스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구축 핵심설비 TCM 라인의 히타치 시스템을 구축했고 실무와 설계를 했다
나는 365일 평소에 퇴근후 나의 행선지를 회사 상황실에 보고를 하고 다녔다 설비 트러블 발생 연락이 오면 즉시 비상출근을 한다 나는 도시바 시스템 미츠비시 시스템 시멘스 시스템도 했으나 전문은 히티치 시스템이다 내가 3급 사원일때 퇴근후에 술을 많이 마셨던 날 설비 고장발생으로 비상 출근했는데 제철소 고위 간부들이 제어장치 룸에 있었다 TCM 설비 트러블시 생산 소재에따라 시간당 1억~3억원
정도의 손실이 생기기 때문에 중고장 발생시 고위직 간부들이 집합한다) 부장이 과장에게 “술냄새 풍기는데 퇴근시키고 다른 직원에게 맡겨라“고 했다 그러나 과장이 부장에게 CPU 5대중에서 핵심 CPU 3대를 전담하는 직원이라서 맡겨야 한다고 했다 나는 트러블 슈팅을 못하게 되면 옷을 벗겠다(사표 내겠다)고 한마디 하고 프로그램 디버깅을 했다 1냉연, 2냉연 TCM 정비팀이 총 출동해서 3시간 정도 트러블의 원인도 못찾았지만 나는 슈퍼바이저들만 아는 핵사 디버깅을 했고 대략 5분만에 원인을 찾았다
해당 CPU를 다시 런 시키고 트러블슈팅을 위해 실측 데이타 소스를 스페어 어드레스로 출력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작성하고 펜레코드에 출력시켜 테이터를 확인했다 현장의 데이터 전송 묘듈카드 에러였다 그래서 “20분 내로 정상화 시키겠다”(스페어 카드를 챙기고 에러 발생된 현장까지 가서 조치하는
시간을 고려한 시간 포함)당당하게 말하고 정비팀 직원에게 정비하라고 했다 결과는 20분이 안걸린
시간으로 트러블슈팅에 성공했으며 자연스럽게 광양제철소 제1인자로 공인을 받았다 나는 가난한 가정환경속에서 성장해서 열등감이 많았으나 성공철학 서적등을 통해서 열등감을 장점화 시켰다 일단 목표 설정을 하면 no adventure no succes와 무리할 정도의 추진력과 스스로 성실하게 노력하는 무기로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그당시에 히타치설비 슈퍼바이저들이 퇴근하면 일본기술자 중에 맘에 드는 슈퍼바이저 한명을 선택해서 의도적으로 업무시간외에 같이 술을 마시고 대화를 자주하면서 유대관계를
가졌다 그래서 히타치 사무실에 자주 출입하게 되어 그들만 보는 설계자를 위한 시스템등의 메뉴얼을 훔쳐서 복사한 자료를 새벽에도 공부했다 그때 친한 사이가 되었던 "토시나리 미요"라는 슈퍼 바이저는 나에게 기술을 전수해주었고 나는(1997년까지 특수센서 shaft displacement detector, commutator spark detector, amature temperature, 2800톤까지 롤포스를 제어하는 HYIOP(특수센서 감마레이
디텍터 위치제어 마그넷 스케일, FMV(force motor valve)등 특수센서 전문가로 REC(roll eccentric control 롤편심제어) AGC(auto gauge control 자동 두께제어)ASC(auto shape control) 100만분의 1까지 제어하는 형상제어) 이 분야에서 (1997년 까지)카이스트 기술자 등급의 국내 3인자, 제철소의 꽃이라는 고부가가치가 높은 TCM SYSTEM 의 광양제철소 제1인자 였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슈퍼바이저 미요싸 덕분이다 나하고 동갑나기인데 세계의 제철소 냉연 시스템은 일본히타치 설비와 소프트
시스템이다 이 특허 설비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페셔날인데 친구가 되었고 지금도 한국에 올때마다
만난다(3년전 동국제강 시스템 구축때 나를 참가 시켰다) 나는 광양제철소의 4냉연공장 TCM LINE(냉간압연)시스템을 구축하는 커미셔닝 팀에 합류했는데(전문용어 commissioning : 기계적 전기적인 종합 시뮬레이션을 해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최적의 상태로 조정하고 정상가동 시킬때 까지의 작업을 뜻함) 1997년 3월 근무지에 출근 안한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뇌진탕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생활 11개월후 지체장애2급으로 퇴원했는데 나는 무난하게 차장승진 할 수 있었지만 과장으로 자퇴를 했다 시스템 사업을 하다가 7억여원을 날리고 2003년 일본 야마나시켄 히가시야시히로에 돈 벌러 갔었다 귀국후 직업훈련원에서 산업플랜트 자동제어 DDC(digital direct control)강사와
광양의 엔지니어링 업체 교육강사 생활도 하면서 노력했다
그래서 에어컨과 보일러도 사용치 않았던 전셋집 생할 18년만에 3층짜리 내집을 소유하게 되었다
지금은 일본어(전자 통신 전기분야) 전문 기술 번역을 한다 그리고지체장애자 시각장애자원봉사와
부산시청 자문위원,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 자문단 기술분과 팀장이다 팀원은 (부경대학교
동명대학교 교수) 보람있게 10년째 사회활동을 한다 지금까지 내 인생을 회고해보면 나의 장점은
1. 어떤 일을 시작하면 끝을 봐야 다음으로 넘어간다 무리할 정도의 추진력과 끈기를 바탕으로 한
성실함이다 2. 역발상을 실행한다 3.지금까지 소속 되었던 조직에 맞춤한 능력, 인간관계와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추억의 연인들은 1991년 슈퍼바이저 미요씨와 부산 터미널에서 당일치기 경주관광을 위해 직행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외국여성 2명이 이사람 저사람에게 뭔가 물으며 난처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내가 may I help you 라고 했더니 경주에 어떻게 가느냐고 했다 서툰 회화실력이었지만 의사 교환을 하면서 같이 경주여행을 했다 그 영국 아가씨 블론디 다즈웰과 펜팔을 했는데 편지를 주고 받었다 내가 영어를 못해서 끝낱다 지금처럼 인터넷 번역기가 있었다면? 인생은 시대적인 혜택과 순간적인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나를 변화 시켜야 한다 나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모을줄 알고 나보다 현명한 사람의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적자생존이 아니라
현자생존시대다
1987년 日本茂城懸日立市久慈町コプカメリア402号 임대아파트에서 자취하면서 타치 시스템 공부할 때
사귀었던 白井玲子(시라이레이코씨)가 나를 사랑한다고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왔고 한국에 왔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으며 5년전까지 연하장 주고 받기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녀는 신장투석을 한다고 했다 그 후에
전화와 편지등의 연락이 끊어겼다 파란종이가 만장이 넘는 것 같은 지난날들이다 미2사단의 카츄사 중사
이셨던 아버지는 국가 유공자로서 다리가 불편하셨다 지금은 국립산청호국원에 계시고 나는 혼자 살고 있어서 가끔씩 옛 연인들 생각에 잠기곤 한다 생각해 보노라니 파란만장, 파란종이가 만장이 넘지 싶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언젠가 삶을 마감 하기전에 장애자타운을 건설하고 운영하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할 거라는 내 인생 목표를 위해 기본적으로 지방에 500평을 마련해두었다 양산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하늘공원 2F 좌측면 나호 41에 내 봉안당도 마련해두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는 나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홀가분하게 아버지, 어머니,
동생을 만나러 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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